INSIGHT

기술에 주권을 담는 시대,
소버린 AI가 묻는 것들

2025.07.09

자국 기술과 인프라, 인재를 활용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AI 시스템 ‘소버린 AI(Sovereign AI)’. 문화·사회적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AI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 디지털 시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올랐는데요. 이에 많은 나라가 데이터 주권 확보에 나섰으나, 실현 여건을 갖춘 곳은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한국은 기술 및 제도 기반 면에서 프랑스,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소버린 AI 구현 가능성이 높은 몇 없는 나라 중 하나이죠.

대한민국 AI 생태계 구축 전략 제안 보고서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대한민국 AI 생태계 구축 전략 제안> 보고서(2025.05)

소버린 AI는 그저 기술 독립만을 의미하지 않는데요. AI에 각국의 고유한 문화와 법·제도, 언어적 특성이 반영됐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권 국가의 기업이 개발한 AI 모델은 영어 중심의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를 내놓기 쉽습니다. 특정 지역의 역사나 문화적 맥락이 왜곡되거나 반영되지 않을 수 있죠. 반면 자국 데이터 기반 AI는 문화와 언어, 사회적 가치관 등을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처리해 정책 수립이나 국민 서비스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가가 정보 주권을 지킬 수 있는지도 소버린 AI를 결정짓는 요건입니다. 자국에서 통제 불가능한 해외 AI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국가 안보, 개인 정보처럼 민감한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AI 기술을 제공하는 국가·기업의 정책에 따라 원하는 정보를 얻거나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죠. 데이터 수집부터 처리, 서비스 구현까지의 전 과정을 자국에서 통제할 수 있는 소버린 AI가 데이터 주권의 핵심인 까닭입니다.

🎯 한국형 소버린 AI의 과제는?

국가 단위의 독립적인 AI 생태계를 만들려면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먼저,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가 필수인데요. AI 학습에 필요한 연산 능력은 막대한 GPU 자원과 이를 운용할 물리적·기술적 기반 없이는 확보할 수 없습니다.

로컬화된 데이터도 중요합니다. 한국 특성에 맞춤화된 AI를 설계하는 데 걸맞은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고 정제해 학습에 활용하는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동시에 개인 정보 보호, 데이터 윤리를 지킬 제도도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의 손과 함께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중심으로 한 AI 관련 아이콘들이 디지털 그래픽으로 표현된 이미지

그러므로 정부, 민간, 연구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공동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죠. 대한상공회의소는 국산 LLM(거대 언어 모델)*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민관이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바탕에는 민간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유연한 목표 설정,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의 기술 토대와 데이터 보유 현황에 적합한 지원책이 요구됩니다.

LLM(Large Language Model)

텍스트 데이터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AI 모델.

초기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공공 부문에서 실질적인 활용 사례를 먼저 만들어내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민원 자동화, 행정 문서 요약, 고령화 대응 솔루션 등 공공성과 기술성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범 적용하는 식이죠.

나아가 민간 AI 모델이 다양한 산업에 특화된 버티컬 AI로 진화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픈 소스 공개, 커뮤니티 생태계 구축, 인프라 비용 투자 등 다각적인 정책 수단도 추진돼야 합니다.

🎲 AI 정책 포럼에서 본 토종 소버린 AI의 가능성

2025년 5월 9일 열린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에서 한국형 AI 생태계 조성을 주제로 단체 기념 촬영 중인 참석자들

그래서 지난 5월 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인공지능학회, 한국인공지능법학회와 개최한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는데요. 기업인, 전문가, 정부 인사 등 총 300여 명이 참석해 AI가 경제, 사회, 산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한국이 AI G3로 도약하기 위한 방향과 과제를 논의했죠. 치열해지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소버린 AI’가 포럼 전반에 걸쳐 언급되는 건 당연했습니다.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 개회사를 진행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 개회사를 진행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개회사 연사로 나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AI는 복합적인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경쟁력 확보 방안이라며, 민관이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염재호 태재대 총장 역시 기조연설에서 같은 전망을 내놓았는데요. 보호무역주의의 확산과 신자유주의의 퇴조라는 경제 질서 변화 속 AI는 신성장 동력이기에 산업 전체 체질 개선 없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국가 AI 정책 방향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 염재호 태재대 총장

국가 AI 정책 방향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 염재호 태재대 총장

또한, 이제는 ChatGPT 같은 범용 AI를 넘어 각 기업과 산업이 어떻게 AI를 내재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죠. 내재화 전략을 통해 2026년까지 최대 연 310조 원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생성형 AI가 한국 경제·사회에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2026년까지 연간 310조 원 규모 경제 효과 발생 예상

생성형 AI가 한국 경제·사회에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2026년까지 연간 310조 원 규모 경제 효과 발생 예상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GPU 자원, 고급 인재 등 핵심 기반이 부족하고, 최고 기술 선도국과 대비했을 때 기술 격차도 1년 이상 존재합니다. 대신 한국은 AI 기술 기반 메모리·반도체와 특허 수 등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저력을 토종 소버린 AI 구축과 생태계 조성으로 연결해 AI 자주성을 모색하는 것이 향후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 한국형 AI 생태계 전략, 기업과 정부의 역할

이날 포럼에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패널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첫 토론에서는 ‘한국형 AI 생태계 전략’을 주제로 민관의 역할을 되짚었죠. 김민기 카이스트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필수 자산인 AI 컴퓨팅 인프라의 확충이 필요하므로 AI의 주요 투입 요소인 전력, 데이터, 인재를 공급하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에서 '한국형 AI 생태계 전략, 기업과 정부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된 패널 토론 장면

중국의 경우 이미 지난 5년간 ‘동수서산(東數西算)’이라는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는데요. 급증하는 데이터 처리 수요에 대응하고, 국가 차원의 디지털 인프라를 강화하려는 목적입니다. 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은 이를 언급하며 한국 역시 국가 기관망 수준의 투자로 인재를 양성하고 활용 사례를 축적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패널들은 이러한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정부와 산학연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AI 산업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AI G3 국가로 도약하려면 원 팀 체제로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죠.

🎉 제조 AI에서 창출하는 성공 신화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에서 '제조 AI를 통한 한국의 성공스토리 창출'을 주제로 진행된 패널 토론 장면

두 번째 토론은 제조업과 AI의 융합 ‘제조 AI’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우리나라만큼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를 다루는 나라가 없는데요. 그 점에서 권석준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제조 AI는 단순히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산업 고도화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특히 산업-AI-에너지를 연계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가 성장 동력 측면에서 돌파구가 될 것이라 피력했죠. 김영옥 HD현대 AI센터 최고개발책임자 또한 제조업 상당수가 롱텀 비즈니스에 기반을 두고 있어, 한 분야에 AI를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보탰습니다.

산업별 AI 도입률에서도 제조업은 타 산업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

산업별 AI 도입률에서도 제조업은 타 산업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
(출처: 산업연구원 <자국 우선주의 시대 한국의 AI 활용 전략>(2025))

하지만 아직 제조 AI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제조 AI 전용 프로젝트가 없고, 해외도 초창기라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지 않은 편입니다. 이종석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제조 현장에서 AI 도입이 지지부진한 이유로 오작동 시 책임 소재 불명확성과 ROI의 불확실성을 꼽으며, 해석 가능한 제조 특화 AI와 신뢰성 확보 기술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 세계 AI 패권 속 K-LLM 경쟁력 확보

마지막 시간은 글로벌 LLM 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LLM은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이 수요 등의 측면에서 앞서갈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네트워크와 국가 안보 측면을 고려하면 K-LLM이 한국 경제에 필요하다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에서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 K-LLM 경쟁력 확보 방안'을 주제로 진행된 패널 토론 장면

정송 카이스트 AI 연구원장도 LLM은 국가의 AI 완성도를 가늠하는 기준이며, 산업 혁신과 디지털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기술이라고 힘을 실었습니다.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해당 기술이 국내 산업 전반에 내재화되도록 생태계 구축은 필수 불가결인 사항이라는 데 모든 패널이 동의했습니다.

🌟 자강과 협력으로 여는 소버린 AI의 길

이번 포럼에서 이야기한 소버린 AI의 핵심은 기술 자립을 넘어 ‘내재화된 생태계 구축’에 있습니다. 전제는 정부, 기업, 학계가 각자의 자리에서 능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이었죠. SK텔레콤도 그 공동 여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간 SK텔레콤은 AI 기술력을 단단히 다지는 동시에 생태계를 넓히고자 2023년부터 국내외 파트너들과 손잡고 ‘AI 피라미드 전략’을 추진해 왔는데요. 무엇보다 AI 인프라, AI 전환(AIX), AI 서비스 세 축을 중심으로 역량을 모아왔습니다.

자체 대규모 언어 모델인 ‘에이닷엑스(A.X)’를 고도화하며 AI 기술 내재화를 강화하고, 앤트로픽(Anthropic) 등 글로벌 AI 기업들과 협업해 다국어 모델 개발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또 ‘AI 인프라 슈퍼 하이웨이(AI Infra Super Highway)’ 전략을 통해 AI 데이터센터, GPU 서비스 등의 기반을 전국 단위로 넓히는 중입니다.

양손 위에 떠 있는 지구본과 연결망을 형상화한 디지털 지구 이미지로, 글로벌 네트워크와 데이터 주권을 상징

AI는 선언만으로 강국이 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가 되고, 기업은 그 빛을 따라 항로를 찾는 선장이 되어야 하죠. SK텔레콤은 앞으로도 그룹 전체의 AI 역량을 결집하는 ‘자강(自强)’을 지속하는 한편, 국내외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협력(協力)’을 통해 한국형 AI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