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여기가
나만의 디지털 쇼룸

2025.07.09

“노션 링크 드릴게요.”, “핀터레스트에 포폴 모아뒀어요.”

요즘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자기소개서를 서류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섹션별로 정리한 노션과 감각적으로 꾸민 핀터레스트 보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아카이빙한 브런치와 틱톡이 그걸 대신하죠 이런 나만의 디지털 쇼룸은 장황하게 쓴 PPT보다 많은 걸 보여줄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온라인에서 나를 드러내는 ‘디지털 쇼잉’에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보여줄게, 디지털 세상의 나

디지털 쇼잉(Digital showing)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기 일상, 작업물, 공간 등을 드러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실 ‘보여주기’ 자체는 인간의 오랜 본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늘 나를 설명해 이해받고 연결되길 원해왔죠.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저서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연극에 비유했는데요. 디지털 쇼잉은 이 무대 위 자아가 현대로 확장된 개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무대에 선 우리는 관객으로 분한 팔로워를 의식하며 특정 자아를 연출하곤 합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역시 인간은 타자의 시선에서 존재를 자각한다고 말합니다. 이걸 디지털 환경에 접목해 볼까요? 어쩌면 좋아요, 댓글, 공유 같은 반응은 상호 작용을 넘어 나라는 존재를 더 뚜렷하게 인식하는 장치로 작용하는지도 모릅니다. 

📸 기록에서 공유로, 공유에서 연출로

노트북, 스마트폰, 카메라, 잡지, 안경, 컵 등이 따뜻한 조명 아래 카펫 위에 놓인 홈오피스 작업 공간

기록은 본래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일기나 사진은 타인에게 보여주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사적인 작업이었죠. 그러나 스마트폰이 발달하고 알고리즘 기반 온라인 플랫폼이 일상화되면서 기록은 점차 ‘보이는 것’이 전제가 됐습니다. 

변화 중심에는 기술과 플랫폼이 자리합니다.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은 개인의 기록은 물론 취향, 라이프스타일 등을 분류해 빠르게 확산시켰습니다. 그 결과 넘치는 정보 속에서 가치 있는 대상을 선별하고 큐레이션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는데요. 과정이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나’라는 브랜드를 연출하는 디지털 쇼룸을 하나씩 마련하게 됩니다. 

한 디지털 광고사가 제안한 2025년 디지털 트렌드 키워드인 ‘숏폼 믹스(Short-form Mix)’도 기록을 대하는 사회 경향을 나타냅니다. 다양한 주제가 숏폼화되면서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 개인 맞춤형 추천 구조가 디지털 쇼잉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 편리하고 창의적으로 어필하는 법: 노션과 피그마

웹과 모바일 환경에서 동일한 UI로 표시되는 온라인 명함 스타일의 노션 프로필 페이지 예시

노션에서 다채로운 템플릿을 활용해 개성 있게 만든 포트폴리오 (출처)

그럼, 요즘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는 쇼룸은 무엇일까요? 마케터,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노션이나 피그마, 브런치스토리는 퍼스널 브랜딩에 최적화된 포트폴리오 도구인데요. 협업 툴로 알려진 ‘노션(Notion)’은 이력, 프로젝트 결과, 사고방식 등을 한 페이지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일해왔고 무슨 성과를 냈는지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인터페이스가 인상적이죠. 분량 제한이 있는 파일 형태와 다르게 하위 페이지, 토글 기능 등으로 소개하고 싶은 내용을 마음껏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다운로드할 필요 없이 접속만으로 열람이 가능한 접근성도 장점입니다. 

그래서 트렌드에 민감한 기업이나 여러 툴을 쓰는 분야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사용률이 높은 편입니다. 노션에 따르면 이를 쓰는 전 세계 대학의 누적 사용률 중 국내 대학 6곳이 상위 2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웹사이트 디자인이 모자이크 형태로 배열된 화면 중앙에 파란색 'Publish' 버튼과 커서 아이콘이 강조되어 있음

기획자, 디자이너들에게 소위 핫한 툴 ‘피그마’(출처)

피그마(Figma)는 노션처럼 웹 기반의 UI/UX 디자인·프로토타이핑 툴입니다. 모든 작업 과정과 피드백 이력이 시각적으로 기록된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유저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했는지, 피드백을 어떤 방식으로 반영했는지 하나의 링크에 고스란히 담기죠. GIF 등 인터랙티브한 요소도 쓸 수 있어 지원자가 포트폴리오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좋습니다. 

실제로 피그마는 2024년 4분기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 중 약 3분의 2가 비(非)전통적 디자인 직군에 속한다고 밝혔습니다. 기획자, 마케터, 개발자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주는 도구로 피그마를 활용 중이란 뜻입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피그마로 ‘일하는 나’를 디자인하고, 자신만의 디지털 쇼룸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 지금의 나 VS 되고 싶은 나: 틱톡과 핀터레스트

스마트폰 화면 이미지. 셀피와 후면 카메라 사진을 동시에 촬영하고,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공유.

‘틱톡’에서 거침없이 숏폼으로 표출하는 표현 욕구(출처)

MZ세대는 기존 세대와 달리 이미지, 영상, 음성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일상이나 정체성을 표출하는 걸 즐깁니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나는 누구인지 말이죠. 그중 틱톡과 핀터레스트는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이들의 디지털 쇼룸이 되고 있습니다. 

동영상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틱톡(TikTok)’은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세계 유행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를 잘 나타내는 게 ‘#FYP(For You Page)’인데요. 내 영상이 당신 피드에 노출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을 때 쓰는 해시태그죠. #FYP는 2025년 6월 초 기준 73억 회 이상 게시물에 사용될 만큼 ‘발견되고 싶은 욕망’을 대표합니다. 이러한 자기표현 욕구와 콘텐츠 확산 알고리즘이 맞물리며 틱톡은 나를 둘러싼 분위기나 영감의 원천을 담아내는 상징적인 공간이 됐습니다.

요가, 메이크업, 아트푸드, 여행, 인테리어 등 다양한 관심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컬러풀한 핀터레스트 스타일 이미지

패션, 뷰티, 인테리어 추세를 탐색하는 앱으로 자리잡은 ‘핀터레스트’(출처)

이미지 공유형 소셜 미디어 ‘핀터레스트(Pinterest)’는 보여주기의 방향을 조금 더 확장합니다. 틱톡이 현재의 나를 보여준다면 핀터레스트는 되고 싶은 나, 마음속 이미지를 수집하는 무드 보드(Mood board) 역할을 합니다. 최근 MZ세대에게 ‘핀터레스트 감성’이라는 키워드가 익숙해진 것도 그 때문이죠. 2025년 4월 기준, 핀터레스트의 국내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전년 대비 22.3% 증가했고 개인의 ‘추구미’를 스크랩하는 비주얼 아카이브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 내 공간이 곧 나의 설명서: 오늘의집

모바일 화면에 표시된 인테리어 및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피드

오늘의집 ‘커뮤니티’에 랜선 집들이를 열어 자신의 감도 높은 일상을 전시하는 사람들(출처)

집은 본래 내밀한 공간이죠. 하지만 디지털 쇼잉 시대에선 이야기가 다릅니다. 나의 공간은 정체성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소파 색채부터 조명 위치, 선반 위 컵까지 자기표현 수단이 되고 있는데요. 그러한 흐름은 팬데믹 이후 홈코노미(Home+Economy)와 집콕 문화가 부상하면서 강해졌습니다. 단지 오래 머무는 곳이라 꾸미기보다 보여주는 장소로 집을 보기 시작한 것이죠. 

국내 최대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의 커뮤니티 페이지가 그 예입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거주하는 공간의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소품 선택, 오브제 배치 등을 통해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식물로 가득한 홈 스타일링은 내추럴한 성향을, 빈티지 가구를 조합한 공간은 유니크한 감각을 드러냅니다. 

이런 트렌드는 새로운 소비 문화도 만들고 있습니다. 필요에 의한 구매가 아닌 스토리텔링을 위한 구매가 증가한 것인데요. 작은 소품 하나도 ‘이걸 놓으면 내 공간이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개적인 퍼스널 브랜딩 설명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려는 현상은 지속되리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