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AI 에게 고민 상담하는 시대,
꼭 알아야 할 한 가지

2025.08.05

장재열 상담가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편집장 소개

얼마 전, 내담자 은정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 요즘에 챗GPT에게 고민 상담해요. 걔 되게 잘하더라고요? 선생님께 상담받으러 와서 이런 말 하는 거 실례려나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전혀요!? 왜냐면 이 얘기, 은정 씨까지 거의 서른 분 째거든요!” 진짜로, 작년즈음부터 유독 은정씨와 비슷한 분이 많아졌어요.

“그 친구가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저 답변 보고 울었잖아요. AI 답변에 울었다고 하면 좀 이상한가요?” 이런 얘기는 상담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죠, “AI가 상담가님의 자리도 위협하는거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년 전만 해도 저는 단호히 말했죠. “AI는 사람의 마음을 대체할 수 없을 거예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는 직업 상위권에는 늘 상담사나 화가, 창작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어떤가요? 미술이나 소설, 작곡까지 AI가 꽤 그럴듯하게 해내기 시작했어요. 전방위로 좁혀져 오는 포위망(?)을 보며 저는 위기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상담까지 잘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어느 날 저도 챗GPT에게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잘하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왜 사람들이 AI를 자신의 대나무숲 삼는지 말이에요.

🤖 AI에게 마음을 여는 이유

장재열의 '리커넥트' 표지 화면

장재열의 '리커넥트' 표지 화면

사람들이 AI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 때문도, 신기해서도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저는 작년에 공익 도서인 <리커넥트>를 집필하면서, 그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이 책은 사회적 고립(직장은 다니지만 아무와도 소통은 안 하는 상태)을 겪고 있는 성인 100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고립은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상태’임을 전하기 위한 일종의 공공 프로젝트였는데요. 최소한의 직장 생활은 하고 업무 연락은 하지만, 마음의 연결은 끊어버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한국 사회는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간섭만 많고 진짜 유대는 없다”고요. 많은 관계 속에서 던져지는 말들이 진짜 나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습관적 평가나 조언, 혹은 비난의 다른 얼굴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그에 비해 AI는 어떤가요? 갑자기 “아니 근데”라며 내 말을 끊지 않을뿐더러,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들어줍니다. 소통 전문가 선생님들이 자주 말씀하시곤 하죠? 사람이 상대에게 초집중해서 경청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20초’ 안팎이라고요. 그걸 넘어 상대의 말을 1분 이상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총알 장전’을 시작한다고 해요. 총알이 뭐냐? 상대방 말 안 듣고 그 사람 말 끝나자마자 내가 할 말을 준비하는 거죠. 그런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쓴 모든 문장을 기반으로 최대한 나를 이해하려고 하죠. 이 ‘경청받고 있다’는 느낌이 최근 우리 삶에서 무척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걸 AI 상담은 채워주고 있죠.

❤️‍🩹 AI는 항상 내 편이다. 문제는 너무 과하게

챗GPT에게 번아웃이 온것같다는 상담을 하는 화면

AI의 답변은 매우 친절하고, 위로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잘못을 탓하지 않고, 지적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데요. 사람이 살다 보면 삶의 무게에 너무 짓눌려 탈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무조건적인 내 편이 되어주는 말이 참 힘이 됩니다.

하지만 챗GPT의 경우, ‘내 편이 되어주는’ 경향이 너무 강해요. 늘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NOT A BUT B 문법으로 답변하곤 하는데요. “번아웃이 온 건 네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조직 문화가 무너져 있어서야.” “이별한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진지한 관계로 나아갈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야.” 이런 식의 응답이 많거든요. 다 네 잘못이 아니라 다른 게 문제라고 답변을 풀어가는 거죠. 그래서 상담가들 사이에선 AI를 두고 “간신배처럼 투머치하게 착하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평가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언제나 무조건 내 편이 되는 건 때론 해가 됩니다. 어떤 고민에는 위로가 아닌 따끔한 직설이 필요한 순간도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너무 위로만 받다 보면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늘 내 잘못이 아니라는데 계속 상황은 나쁘기만 하다면? 그건 희망이나 용기를 주기보단 ‘내 잘못은 아닌데 항상 힘드네? 그럼 이건 내 팔자 문젠가?’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무력감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살펴볼 점은 있어요. AI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겁니다. 직장 생활에 너무 지친 어느 날, 본가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 한 공기에 눈물이 왈칵 흐르는 경험. 친한 친구가 우리 동네 카페로 찾아와서 3시간이고 4시간이고 내게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그냥 옆에 가만히 앉아 있어 준 경험. 그것만이 주는 위로와 온기가 있죠. 바로 그런 지점이 AI가 대신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일 수 있습니다.

📝 상담가도 쓰는 AI, 이렇게 활용해요

그렇다면 저는 결국 AI가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하고 싶은 걸까요? 아닙니다. 앞으로 AI가 사람의 마음 건강까지 돌보는 시대가 온다는 건 바꿀 수 없는 흐름이에요. 다만, ‘AI가 필요한 순간’과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가지기만 하면 AI와 인간 양쪽에게 적합한 순간에, 딱 맞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답니다. 자 한번 살펴볼까요? AI가 인간보다 특히 더 잘할 수 있는 마음 돌봄의 특기는요, 바로 자기 이해와 자아 탐색을 위한 ‘심리 분석가’ 역할입니다.

저는 이렇게 활용해요. 재작년부터 매일 아침 친구들과 하루 1분씩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메모장에 한 줄씩 적어 단톡에 공유하는 ‘존재 소개’ 리추얼을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나는 즉흥적인 사람과 일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 “나는 말주변이 좋아서 외향인으로 종종 오해받는 극내향인” 같은 것들이죠. 어느덧 2년 넘게 하다 보니 450개가 넘는 저에 대한 로우 데이터가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이 450줄의 ‘나는 (          )한 사람이다’라는 글을 다 복사해서 AI에게 분석하게 시켜봤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어요. 한번 보시겠어요?

AI를 통해 분석한 장재열 리포트 요약본

AI를 통해 분석한 장재열 리포트 요약본

어때요? 실제 리포트는 분량이 길어 요약본 이미지로 정리해 보여드렸는데요. 내용을 보면 MBTI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나만을 위한 직접적인 자기 분석 리포트가 완성됩니다. 물론 그만큼 충분한 로우 데이터가 제공됐기 때문이지만요.

❤️‍🔥 AI는 따스함을 다시 지피는 불씨

AI와 함께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쓰는 장면

이런 식의 자기 탐색은,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고 고민을 나눌 사람도 부족한 현대 사회에서 아주 좋은 대안적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지속되고 반복되다 보면, 역설적으로 AI는 사람이 사람과 다시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좋은 연습 대상이 되어줍니다. 이야기를 꺼내는 연습, 위로받는 훈련, 나를 이해하는 탐색.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사람에게 다가갈 용기를 얻는 거죠.

결국 “AI가 인간 상담사의 자리를 빼앗을까?”라는 질문에, 저는 예도 아니오도 아닌 “그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네요”라고 답하고 싶어요. AI가 반드시 인간의 적대적인 존재인 대립점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사람 사이에서 꺼져버린 따뜻함을 다시 되살리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기술을 우리가 잘만 사용할 수 있다면, 결국 AI는 사람을 향하게 될 거라고 저는 믿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