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아뇨, 있었는데 없어요
(feat. 스마트폰)

2025.07.09

“우리는 오늘 휴대전화를 새로 발명했습니다.”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하며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알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구나.’ 하지만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이 작은 기기가 앞으로 수많은 산업을 변화시킬 거란 사실을 말이죠. 껌부터 장난감, 시계 산업까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나타난 변화를 짚어봅니다.

😲 스마트폰 탓에 단물 빠진 껌?

갈색 배경 위에 놓인 흰색 정육면체 껌 두 조각

껌은 입이 심심할 때 찾던 대표 간식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미국 시장 조사 기관 IRI(Innovative Routines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19년 31억 3,000만 달러(약 3.9조 원)에 달하던 미국 껌 시장 규모는 2021년 23억 8,000만 달러(약 3조 원)로 감소했는데요.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제과 업체의 껌 매출이 같은 기간 32% 이상 줄었죠.

왜 사람들은 이제 껌을 찾지 않을까요? 원인 중 하나는 젤리 같은 대체제의 인기입니다. 실제로 껌 시장이 하락세일 때 국내 젤리 시장 규모는 2018년 3,946억 원에서 2023년 4,473억 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흥미로운 분석도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껌 소비의 상관관계이죠.

본래 껌은 시간을 때우는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약속 장소에서 우리는 껌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피드, OTT 최신 업데이트를 확인하는 무한 굴레 속에서 좀처럼 지루할 틈이 없으니까요. 이에 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2007년부터 껌 판매가 줄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편의점 계산대 줄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시선은 계산 순서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에 가 있죠. 껌 제조 업체들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졸음 방지, 금연 보조 등 기능성 껌에 집중하고 있지만 전처럼 일상 속 무료함을 채우는 역할을 하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맛이나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껌이 파고들 빈틈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놀이터에서 사라진 소꿉놀이 풍경

실내 바닥 위에 놓인 빨간색 장난감 오프로드 장난감 차량

장난감 왕국이라 불리던 세계 최대 완구 전문 업체 ‘토이저러스’는 2017년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2018년에는 미국 내 전체 점포가 폐점됐죠. 토이저러스뿐만 아닙니다. 미국 완구 산업 협회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자국 전통 장난감 시장이 매년 2~3%씩 축소됐다고 말합니다.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히는 건 급증한 스크린 타임입니다. 아이들이 물리적 장난감보다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것인데요.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대신 마인크래프트에서 무한한 세계를 건설하고, 인형 놀이보다 로블록스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놀이의 리듬도 바뀌었습니다. 예전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로 몇 시간씩 집중해 놀곤 했습니다. 고사리손으로 블록을 조립하고, 인형에게 어울리는 상대와 직업을 고르며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한편 요즘 아이들은 모바일 게임, 숏폼 콘텐츠처럼 빠르고 강한 자극에 몰입합니다.

어린이 29.9%가 24개월 이전에 스마트폰을 쓰는 건 물론, 가장 많이 이용하는 미디어 기기가 스마트폰(77.6%)인 점도 이상하지 않은데요(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그래서 스마트폰 대중화 후 달라진 판도에 레고(The LEGO Group), 마텔(Mattel), 해즈브로(Hasbro) 등 글로벌 완구 기업들은 디지털 플랫폼과 결합을 모색 중입니다.

⌚️ 시계 장인이(가) 애플워치를 싫어합니다

가죽 스트랩 시계들이 정갈하게 정리된 고급 시계 보관함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 시계 산업. 롤렉스(ROLEX), 오메가(OMEGA),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은 시계 브랜드를 넘어 장인 정신과 정밀함의 상징이었죠. 그러나 어느새 손목을 드는 것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는 게 익숙해졌습니다.

더 치명적이었던 건 스마트 워치의 등장입니다. 애플워치가 나온 해를 기점으로 전통 시계 시장의 붕괴 속도에 불이 붙었는데요. 2015년 스위스 시계 수출액은 약 215억 프랑에서 이듬해 약 194억 프랑으로 감소합니다. 6년 만의 최저치였죠.

애플워치가 갓 나왔을 때만 해도 시계 업계 반응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스마트 워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스와치그룹(Swatch Group) CEO였던 세계 시계 산업의 대부 닉 하이에크의 발언인데요. 애석하게도 애플워치 판매량은 출시 5년 만인 2019년 3천만 개에 이르게 됩니다. 당연히 같은 기간 스위스 시계 판매고(2천만 개)를 가뿐히 넘었죠.

그 후 시계 산업은 묘하게 흘러갑니다. 하이엔드 브랜드만 살아남는 양극화가 뚜렷해진 것인데요. 소위 ‘롤오까(롤렉스·오메가·까르띠에)’로 대표되는 럭셔리 시계는 매출이 오르고, 특정 모델은 리셀 시장에서 웃돈까지 붙었습니다. 반면 세이코(SEIKO), 시티즌(CITIZEN), 타이맥스(TIMEX)처럼 합리적인 가격대의 대중 브랜드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실용성 경쟁에서도, 패션 아이템 성장에서도 가려졌죠. 그렇게 스마트폰 이후 시계 시장은 ‘기능’을 쫓는 스마트 워치파, ‘가치’를 우선하는 하이엔드파로 양분됩니다.

📷 카메라 대신 대여하는 갤럭시 울트라

고전 필름 카메라와 함께 놓인 세 개의 필름통

찰칵 소리와 함께 터지는 플래시, 필름을 감는 소리, 현상소에서 인화된 사진을 찾던 설렘… 앞으로는 이 모든 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2012년, 코닥(Kodak)이 파산 보호 신청을 했는데요. 2013년 9월에는 필름 및 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했습니다. 1888년 창립해 세계 최초의 휴대용 사진기를 발명하며 한때 미국 25대 기업에 오른 기업이 무너진 겁니다.

니콘(Nikon) 역시 사실상 콤팩트 카메라 시장에서 철수하고, 캐논(Canon)도 엔트리급(입문용) 대신 미러리스, 고급 기기 위주로 사업을 재편했습니다. 세계 최대 카메라 브랜드 중 하나였던 올림푸스(OLYMPUS)는 3년간 적자를 기록하다 84년 만에 아예 카메라 사업을 처분하고 맙니다.

숫자로 보면 크게 체감됩니다. 2010년 세계에서 1억 대가 넘게 팔리던 디지털 카메라는 2019년 1,500만 대, 2020년에는 880만 대로 급감합니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 향상이 주요 원인이었죠.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늘었는데요. 다만 그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현상해 앨범에 보관하던 문화를 즉시 편집해 공유하는 문화로 바꿨습니다. 촬영을 비롯해 편집-보정-공유까지 한 기기에서 처리하는 스마트폰은 카메라 업계에 전환점을 가져온 것입니다. 대중 시장을 거의 잃은 카메라 제조사들은 풀 프레임 중심의 고성능 카메라, 영상 전문 장비 등으로 특화한 분야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스마트폰이 많은 걸 바꿔놓을 줄 처음에는 몰랐을 겁니다. 관련 없어 보이고 견고하던 산업들이 수많은 기기와 루틴을 흡수한 메타 기기 앞에서 밀려났으니까요. 그러나 이 변화가 꼭 부정적인 건 아닙니다. 앱 개발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스마트폰에서 파생된 신종 직업과 시장도 커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잊힌 것은 색다른 가치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LP의 귀환, 필름 카메라 감성, 높은 리셀가를 자랑하는 아날로그 시계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