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AI 시대,
세종의 한글을 생각하다
2025.10.02
곧 한글날이다. 한글날이 10월 9일로 정해진 것은 좀 우스운 해프닝도 작용했지만, 많은 사람이 1년에 한 번쯤 한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글은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가장 훌륭한 문화유산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지금 같은 AI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꽤 있기 때문이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일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야기해 보겠다.
✍️글자, 그림에서 소리로 진화하다
세계 문자는 처음에 그림으로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물건의 모양을 그려서 그 물건을 뜻하는 단어를 표시하는 상형문자가 대표적이다. 복잡한 물건은 점차 획을 단순화하여 도식화하고,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도 같은 글자로 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단어의 발음이 문자에서 점점 중요해지면서, 결국 단어의 뜻이 아니라 발음을 글자로 나타내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표음문자가 탄생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이러한 변화가 처음 일어난 서아시아 지역의 언어들은 대체로 자음 체계가 복잡하지만 모음 체계는 매우 단순했다. 그래서 모음은 글자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자음만 표시하는 자음문자(abjad)가 등장했다. 아랍문자나 히브리문자가 이에 속한다. 이 자음문자는 동쪽으로 전해져 고대 인도에서도 여러 언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인도에서는 자음 글자가 기본 모음(보통 '아')과 결합할 때는 그대로 두고, 그 외 모음과 결합할 때는 글자의 상하좌우에 작은 구별 부호를 첨가했다. 이를 자음중심문자(abugida)라고 하며, 브라흐미 문자나 데바나가리 문자 등이 이에 속한다. 티베트에서는 고대 인도 문자의 영향을 받아 자체 문자를 만들었는데, 모음을 나타내는 부호의 독립성이 약간 향상되었다. 특히 원나라 시대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은 티베트 승려 파스파는 티베트 문자를 바탕으로 자음의 독립성을 더욱 높인 문자, 파스파 문자를 만들었다. 파스파 문자는 자음과 모음을 완전히 대등하게 취급하는 자모문자(alphabet)에 거의 근접한 형태였다.
세계 문자의 역사
한편 중국에서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만들었다. 중국 주변의 거란족(요나라), 여진족(금나라), 탕구트족(서하) 등도 한자의 영향을 받아 각자의 표의문자(거란문자, 여진문자, 서하문자)를 발전시켰다. 요컨대 세계 문자사의 흐름을 보면, 중국과 그 주변에서는 표의문자가 이어져 왔지만 서아시아에서는 표음문자로의 전환이 일어났고, 처음에는 자음만 표기하다가 남아시아를 거쳐 동쪽으로 올수록 점차 모음 글자의 독립성이 향상되어 자모문자에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글은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가 완전히 대등한 지위를 지닌 온전한 자모문자로서 등장하여 세계 문자 발전의 화룡점정이 되었다.
지금 관점에서 세계 문자사를 돌아보면 아시아의 동쪽 끝자락 한반도에서 완전한 자모문자가 출현한 것이 역사적 필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 세종이 이런 유형의 글자를 만들기로 결단한 것은 엄청난 용기와 식견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세종이 당시 참고할 만한 가장 두드러진 언어학 이론은 중국의 음운학이었는데, 중국 음운학에서는 음절을 성모(초성)와 운모(중성과 종성)로 2분하는 관습에 매몰되어 있었다. 세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성에 오는 소리와 종성에 오는 소리가 동일한 소리(즉 자음)임을 정확히 인식하였고, 동일한 자음 글자를 초성과 종성에 사용한다는 엄청난 결정을 내린 것이다.
🔬 ‘ㄱㄴㄷ’에 담긴 세종의 과학
세계 문자사의 흐름을 정확히 꿰고 있다 해도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를 만들 때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정확히 분석하지 못한다면 좋은 문자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한국어의 음운 체계도 정확하게 분석했다.
즉, 어떤 소리들이 서로 비슷한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소리들 사이의 그러한 차이가 다른 소리들에서도 평행하게 나타나는지 어떤지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래서 소리들 사이의 관계가 글자의 모양에 체계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 한국어의 장애음은 각 조음 위치별로 평음-격음-경음의 3원 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평음 글자를 먼저 만들고 여기에 규칙적으로 획을 더하거나 반복하는 등의 조작을 가하여 격음과 경음 글자를 만들었다. ㅂ-ㅍ-ㅃ, ㄷ-ㅌ-ㄸ, ㄱ-ㅋ-ㄲ, ㅈ-ㅊ-ㅉ의 모양을 보면, 세종의 음운 분석의 정확성과 체계성을 여실히 볼 수 있다.
🪐ㆍㅡㅣ, 철학과 세계를 품다
모음 체계도 정확히 분석하여, 여러 모음들 중 3개가 가장 기본임을 간파했다. 이 3개의 모음을 나타내는 글자를 어떤 모양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동양 철학에서 만물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삼재(三才, 즉 하늘, 땅, 사람)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하늘을 본뜬 ‘ㆍ’(아래아), 땅을 본딴 ‘ㅡ’, 사람을 본딴 ‘ㅣ’를 만들었다.
이 세 모음 글자를 바탕으로 다른 모음 글자를 만들 때는 음양오행 철학을 이용했다. 한국어의 모음 체계를 보면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어, 하나의 어절 내에서는 같은 부류의 모음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모음조화라고 한다. 세종은 이 사실을 간파하였는데, 여기에 음양 사상을 가미하여 하나는 양성, 다른 하나는 음성이라고 간주하였다. 이렇게 해서 양성모음 글자 ‘ㅗ, ㅏ’, 음성모음 글자 ‘ㅓ, ㅜ’가 만들어졌다. (원래의 모양은 수평선, 수직선 상하좌우에 점이 있는 형태다.) 이 네 개의 모음 앞에 반모음 ‘j’가 추가된 이중모음은 ‘ㅛ, ㅑ, ㅠ, ㅕ’로 하였다.
자음은 조음 위치에 따라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으로 분류되는데, 이것을 오행인 나무, 불, 흙, 쇠, 물(木火土金水)과 결부시켰다. 그래서 각 자음의 소리를 설명할 때 이 다섯 가지 근본 물질의 특성, 그리고 이와 결부된 계절의 특성과 연결시켜서 설명하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 견강부회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지배적 사상이었던 성리학의 철학을 문자에도 반영하고자 했다는 야심 찬 의욕이었고 한글의 품격을 높여주는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 비밀 프로젝트, 세종의 승부수
세종은 나이 50 언저리에 접어들면서 당뇨, 안질, 피부병 등에 시달리고 있었고, 세자(뒤의 문종)가 이미 장성했으므로 정무의 상당 부분은 세자에게 맡겨 놓고 있었다. 그래서 한글 창제를 위한 연구에 좀 더 몰두할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한글 창제 관련 연구를 여러 신하들에게 드러내 놓고 한 게 아니라 은밀히 한 것으로 보인다. 국왕이 큰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세종이 불교 문제로 신하들과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이느라 지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그 자손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지만, 조선의 국시는 유교였기에 불공을 드릴 때마다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자 이외의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작업을 국왕이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신하들이 또 크게 들고 일어나서 반대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이 일은 비밀리에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만약 한글 창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추진했다면,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초기에 좌초되었을 수도 있다. 세종의 정치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AI 시대, 다시 배우는 세종의 지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강대국들이 AI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막대한 힘을 쏟아붓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도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한 일은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일 필요도 있다. 여기서 세종으로부터 배울 점이 꽤 있다.
첫째,
세종이 세계 문자사의 흐름을 꿰뚫어 본 것처럼, 우리도 AI 등의 첨단 기술의 발전 역사 및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혜안과 통찰력을 다지고 꿰뚫어 보아야 한다. AI의 최신 기술에만 현혹되기보다 장기적인 추세와 경향에서 통찰을 얻어야 한다.
둘째,
세종이 한국어 음운 체계를 정밀히 분석한 덕분에 좋은 문자를 만들 수 있었듯이, 우리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AI가 더 넓고 깊게 체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를 위한 생태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세종이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한글 프로젝트를 슬기롭게 추진했듯이, 우리도 적절한 시기에 정책적 결단을 내리고 일단 설정된 방향을 위해서는 과감한 추진력으로 빠르게 치고 나갈 필요도 있다.
넷째,
세종이 문자 창제 작업에 철학적 기반을 탄탄하게 두려고 했듯이, 우리도 AI 등의 첨단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할 때에도 확고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해야 한다.
세종은 세계사적 흐름을 잘 알면서도 그 안에 안주하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뛰어넘는 가장 좋은 것을 창조했다. 그렇듯이 우리도 AI의 세계적 흐름을 잘 파악하되 이미 검증된 것들 안에 안주하기보다 이를 뛰어넘는 돌파구를 스스로 찾을 필요가 있다. 세종의 지혜를 되새긴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