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TORY
이세돌 바둑기사에게
‘먼저 본 미래’를 묻다
2025.11.11
“바둑은 완벽히 인간의 손을 떠났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은 다시 그 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AI를 이해만 한다면, 바둑은 다시 인간의 손으로 돌아올 겁니다.”
2016년 3월, 전 세계의 시선이 서울의 한 호텔로 쏠렸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세기의 대국이라 불린 그곳에서 이세돌 9단은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 마주 앉았다. 결과는 1승 4패. 비록 패배했지만, 그가 거둔 1승은 인류가 AI를 상대로 거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알파고 쇼크 이후, 생성형 AI는 우리의 일상과 산업 깊숙이 파고들며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SKT는 AI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미래를 먼저 경험한 이세돌 9단의 지혜를 듣기 위해 SK AI Summit 2025에 그를 초대했다. 인류의 대표로서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장 먼저 체감했던 그가 바라보는 AI 시대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통찰을 통해 ‘정답 없는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인생의 수’를 찾아본다.
🕖 10년의 회고: 알파고 대국 그 후
Q. 알파고 대국 이후 약 1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AI 시대를 사는 우리가 되새겨 봐야 할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이세돌 9단은 AI 시대의 도래를 온라인 시대, 스마트폰 시대와 같은 거대한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그는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다”고 단언한다. 기술이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 기본을 지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hatGPT의 등장은 우리가 ‘인간만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적 사고까지 AI가 침범하는 것처럼 보여 이전의 변화와는 다르다는 불안감을 주지만, 이세돌 9단은 “그렇지 않다, 똑같은 변화”라고 강조한다.
그가 제시하는 AI 시대의 핵심 프레임은 ‘처음과 끝은 인간, 중간은 AI’다. AI는 인간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즉 ‘중간’ 단계에서 막대한 도움을 주는 도구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결정하고(처음), AI가 내놓은 결과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완성하는 것(끝)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프레임워크를 이해하면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AI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AI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중간 정도예요. 처음과 끝은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중간 부분에서 AI가 많이 도와주는 거죠.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이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이 도구를 이용하고 활용해야겠지만, 인간만의 영역에서 기본이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격차를 벌리는 도구, AI
이세돌 9단은 AI가 등장하면 누구나 최고의 수를 배울 수 있으니 바둑 기사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최상위 랭커와 하위 랭커의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졌다. 그는 이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둑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사회 전체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분들은 예전에 네 명 이상이 하던 몫을 해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죠. 예전에는 격차가 벌어져도 속도가 느렸지만, 생성형 AI가 나오면서 격차가 확확 벌어집니다. 나중에는 쫓아갈 생각도 못 할 정도로요.”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기술 사용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상위 랭커들이 AI를 더 잘 활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AI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는 AI 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 이용(Use)을 넘어 활용(Utilize)으로
Q. 최근 강연과 인터뷰에서 AI를 단순히 ‘이용(Use)’하는 것과 ‘활용(Utilize)’하는 것은 다르다고 꾸준히 강조해 오셨는데요, ‘진정한 활용’이란 무엇이며, 이 둘의 결정적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세돌 9단은 ‘이용’과 ‘활용’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그에게 ‘이용’은 AI를 단순한 도구로 써서 정해진 작업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PPT 제작이나 정보 검색처럼 명확한 지시를 내리고 결과를 얻는 행위다. 그는 “예전엔 한 시간 걸리던 PPT 제작이 이제 몇 분이면 끝난다. 너무 쉬워졌다. 하지만 그건 위험하다”고 말한다. 단순 이용에만 머무르면 AI에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반면, ‘활용’은 AI와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과정이다. 그는 이를 ‘AI와 대화하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고, 그 답변을 바탕으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질문’과 ‘주도적인 판단’이다.
“창의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냥 생각만 해서는 창의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어요. AI와 정말 대화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질문하고 답변을 받고 다시 던지는 이런 행위가 바로 활용의 시작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AI 시대의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냐는 겁니다.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겁니다.”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며 깨달은 ‘활용’의 본질
그는 직접 생성형 AI와 협업하여 보드게임을 만든 경험을 예로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준비 없이 ‘보드게임을 만들자’는 막연한 아이디어만으로 AI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AI가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게임의 기본 규칙과 형태 등 어느 정도의 ‘시제품(제작물)’을 준비한 뒤 다시 AI에게 도움을 청하자, 단 몇 시간 만에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활용’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인간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방향을 설정하는 ‘처음’ 단계를 주도해야 AI가 ‘중간’ 단계에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증폭시키는 파트너라는 뜻이다.
📝 정답 없는 시대를 살아갈 청년들에게
Q. AI가 전문직의 업무까지 대체하는 지금, 수많은 직장인들이 '언젠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핵심 역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역량에 대해, 이세돌 9단은 ‘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AI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창의적으로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소통은 다릅니다. AI를 장난감처럼 단순히 ‘이용’만 하는 사람과, 그것을 ‘활용’하여 창의적으로 질문하고 판단하는 사람 사이에는 깊이 있는 소통이 이뤄지기 어려울 겁니다.”
이는 AI 활용 능력의 격차가 교류의 단절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매개로 더 깊이 사유하고, 다른 사람과 창의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다는 것을 이세돌 9단은 다시금 강조했다.
Q. 마지막으로,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거나 자신만의 길을 찾는 청년들에게, ‘정답이 없는 AI 시대’를 살아갈 인생의 지혜, 혹은 경험이 응축된 ‘인생의 수’ 하나를 조언해주신다면 무엇일까요?
이세돌 9단은 스마트폰 혁명 당시 젊은 세대가 열광했던 것과 달리, AI 시대의 청년들이 오히려 혼란과 위기감을 느끼는 현상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는 “기존에 해왔던 것을 바탕으로는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것 같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역설한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상황을 저는 너무 좋아합니다. 내가 안 보인다는 건, 상대방도 안 보인다는 얘기거든요. 지금 청년들이 혼란스럽고 정말 알 수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0대 중반이든 40대 초반이든, 그 위든 다 똑같이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젊은 세대들이 앞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모두가 처음 걷는 길이기에, 경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기성세대의 편견 없이 새로운 판을 읽는 젊은 세대에게 유리한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의 조언은 명쾌하다.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AI를 직접 만져보고 ‘재미’를 느끼라는 것이다. 그 역시 특별한 목적 없이 여러 생성형 AI와 대화하며 그 차이를 비교하고, 질문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말한다. 이런 ‘재미있는 탐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AI 활용 능력이 길러지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혼란스럽고 정말 알 수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해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결국 젊은 세대들이 앞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생각하시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세돌 9단이 본 SKT의 ‘AI를 향한 진심’
이세돌 9단이 SK AI Summit 2025 AI 숏톡 프로그램에서 발언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AI 기술의 본질과 사회적 파급력을 냉철하게 분석한 이세돌 9단. 그는 SK AI Summit 2025에 참여한 소감을 밝히며 SKT에 대한 인상을 덧붙였다.
“SKT는 정말 AI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기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SKT만큼 AI에 대해 ‘진심’인 기업도 없는 것 같아요. 국내 최대 규모의 AI 행사를 꾸준히 열고, AI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글로벌 리더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I라는 미지의 바다를 가장 먼저 항해했던 탐험가, 이세돌 9단. 그의 통찰처럼, AI 시대를 주도하는 힘은 기술 자체를 넘어, 그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향한 ‘진심’을 담아 활용하는 데 있을 것이다.